테슬라, 폭스바겐, 폴스타 등 수입 전기차 회사들은 국가보조금 지원 상한선에 맞춰 차량 출고가를 100만~200만원 인하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업체들도 중저가 보급형 전기차 출시 일정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가 시장의 주류로 정착하기 전 과도기적 정체기인 ‘캐즘(Chasm·골짜기)’을 넘어갈 수 있을지 갈림길에 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국내 판매 중인 모델Y 후륜구동 가격을 5499만원으로 기존보다 200만원 낮췄다. 모델Y는 지난해 1만3000대 넘게 팔린 테슬라의 대표 모델이다. 폭스바겐도 ID.4 프로라이트 트림 가격을 5490만원으로 기존 대비 200만원 내렸다. 폴스타는 올해 폴스타2 롱레인지 싱글모터 가격을 작년보다 100만원 내린 5490만원으로 정했다. ID.4와 폴스타2는 모두 작년 약 1600대 팔렸다.
수입 전기차 회사들이 가격을 일제히 내린 것은 환경부가 올해 전기차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는 판매가격 상한을 기존 570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조정한 데 따른 것이다. 환경부는 전기차 구매 국가보조금을 작년보다 각각 30만원 적은 최대 450만원(경·소형)~650만원(중·대형)으로 정했다. 5500만원 미만 차량만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5500만~8500만원짜리 차량에는 절반만 지급한다. 8500만원이 넘는 차량에는 지원하지 않는다.
환경부는 차량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도 추가 공개했다. 자동차 회사가 최초 전기차 출고 가격을 전년보다 내릴 경우 인하액의 30%, 최고 50만원을 추가 지원한다. 예를 들어 제작사가 출고가격을 100만원 인하하면 30만원, 150만원을 인하하면 45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출력효율과 재활용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LFP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도 보조금이 차감된다. 출력효율은 배터리의 부피(L)당 전기 출력(Wh)으로 계산한다. 500Wh/L를 초과할 경우엔 전액 지급된다. 재활용률은 폐배터리 1㎏에서 나오는 유가금속의 가격을 기준으로 등급화해 적용한다.
중국이 세계 1위인 LFP 배터리는 국산 전기차에 주로 장착되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등 삼원계 배터리와 비교해 출력효율이 30%가량 낮다. 또 LFP 배터리는 경제성이 있는 금속이 리튬뿐이다. 폐배터리 재활용 기준을 보조금에 적용하는 것이 LFP 배터리에 치명적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시장에서 팔리는 전기 승용차 중 LFP 배터리를 적용한 차량은 테슬라 모델Y다. 중국 브랜드의 전기 승용차는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다. 국산 전기차 중에선 KG모빌리티의 토레스와 기아 레이 EV에 LFP 배터리가 장착됐다.
다만 환경부가 이번 보조금 개편에서 경형 이하 차종에는 배터리 에너지 밀도에 따른 차등 지급 방안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기아 레이 EV는 감액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올해 7월 출시 예정인 현대차 캐스퍼 EV에는 NCM 배터리가 탑재될 전망이다.
자동차 회사의 AS 및 충전 기반 확충 책임도 대폭 강화했다. 작년까지는 직영 정비센터를 1개 이상 운영하는 제작사 차량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전액 지급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전국 8개 권역(서울 경기 인천 강원 충청 영남 호남 제주)에 직영 정비센터를 운영하는 경우에만 보조금이 지원된다.
자동차 회사가 급속충전기를 확충할 때 지급되는 인센티브 규모는 40만원으로 늘었다. 3년 내 100기의 충전기를 설치한 경우 20만원, 200기 이상의 충전기를 설치할 경우 40만원을 지원한다. 전기 승용차를 택시용으로 구매 시 추가 지원금은 250만원으로 확대했다.
전기 상용차 시장 변화 주목
정부는 이번 보조금 개편안에서 최대 7000만원인 보조금 상한선은 유지한다. 다만 배터리 출력 효율에 따른 차등 지급 요건을 강화하고 재활용률을 새로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적용하면 NCM(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버스와 중국산 LFP 배터리가 적용된 전기버스가 받는 보조금의 차이는 최대 5300만원에 달한다. 전기 화물차와 전기 승용차의 배터리에 따른 보조금 차이가 각각 704만원, 268만원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큰 차이다.
BYD가 넘보고 있는 국산 전기트럭 시장은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기존 입지를 굳히게 됐다. 작년 현대차는 포터2 일렉트릭을 2만5800대 판매했다. 기아 EV6(1만7000대)보다 많이 팔려 국내 전기차 신차 등록 1위다. 기아 봉고3 EV는 1만5100대 팔렸다. 국내에서 네 번째로 많이 팔린 전기차다. 포터2 일렉트릭과 봉고3 EV에는 NCM 배터리가 장착돼 있다.
BYD는 작년 4월 전기트럭 T4K를 한국에 출시하며 상용차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다만 미흡한 사후서비스(AS) 망 등으로 국내 판매량은 연간 목표치(3000대)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환경부의 이번 보조금 정책 개편으로 인한 효과가 일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LFP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에 보조금이 덜 지급되더라도 생산 공정 등 기술 혁신으로 인한 차량 가격 인하 속도가 더욱 빨라지면 결국 소비자가 체감하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정부 정책만으로 전기차의 경제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값싸고 성능 좋은 전기차인 만큼 연구개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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